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바보들의 행진 (문단 편집) == 평가 == >나쁜 장소, 나쁜 시간. [[1975년]] 남한은 모든 것이 나빴다. 그해 초 또다시 [[제4차 국민투표|유신헌법이 통과]]되었다. 그리고 5월 [[긴급조치]] 9호가 발동되었다. [[방위세]]가 신설되었고, [[민방위]]가 창설되었다. 사회는 냉전 상태가 되었다. 하길종은 자포자기가 된 것 같았다. 전하는 말에 따르면 그는 매일 술을 마셨고, 술집에서 난동을 부렸고, 만나는 사람마다 “피고는 할 말이 있는가!”라고 시비를 걸었다.[* 이 같은 울분에 빠져 하길종은 결국 1979년 세상을 떠났다.] 〈바보들의 행진〉은 야심적인 영화가 아니라 자기비하의 영화이며, 스스로를 학대하는 영화이며, 그러면서 부끄러움에 사로잡힌 영화이며,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식인들을 조롱하는 영화이며, 가련한 젊음을 위로하는 영화다. >---- >ㅡ [[정성일]], 〈바보들의 행진〉 제작 당시를 회고하며 [[https://www.hani.co.kr/arti/culture/movie/894684.html|#]] >〈바보들의 행진〉은 검열 시대의 아이러니한 걸작이다. 젊은이의 절망도 적을 이롭게 할 수 있다는 이유로 [[공산주의|용공]]이 되고 명랑과 건전만이 강요되던 [[대한민국 제4공화국|유신체제기]], 이 영화는 당시 대학생의 모습을 코미디로 풀어내고 결말에는 주인공을 입대케 함으로써 표면적으로는 명랑과 건전을 충족시킨다. 그러나 그 이면에는 '바보'가 되어야 살 수 있는 청년들의 현실을 웃음으로 비틀며 비극보다 더 진한 슬픔을 자아낸다. >---- >ㅡ 박유희, 영화평론가 [[https://www.kmdb.or.kr/story/179/3808|#]] 당시 사람들에게 매우 인기가 많았던 영화로, 서슬퍼런 [[10월 유신]] 체제에 대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영화이다. 하지만 이 영화는 유신 독재정권으로부터 영화 검열을 크게 받는 바람에 무려 __30분이 넘어가는 분량이 잘려 나갔다__. 정확히 말하자면 촬영 후 완성본에서 잘려나간 건 15분 정도인데, 촬영 전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검열 및 삭제 당했기에 감독이 의도한 온전한 버전은 애초에 만들어지지도 못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